내가 한국산악회에 입회하면서부터 김정태 선생은 사진에 관한 한 나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평생을 두고 필요할 때면 사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1959년 9월이었다. “내일 스키 훈련이 있으니 함께 가서 훈련 모습을 찍어 줄 수 있냐”고 제의했다. “아직 더위도 가시지 않은 뙤약볕에 무슨 스키 훈련이냐”고 하자 “그런 것이 있으니 꼭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그런 부탁이 있을 때마다 김정태 선생은 항상 가슴속의 뜨거운 열정과 애틋한 눈초리로 설득했고, 나는 그의 부리부리한 눈매에 늘 설득 당했다. 내키지
나에게 한국산악회는 산악운동의 모체이기도 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산악사진 역시 한국산악회를 통해 영글어 가고 있었다. 당시 주변 어느 사회단체에서도 볼 수 없는 굵직한 일들이 늘 산악회를 통해서 발생했는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회원 모두 발 벗고 나섰다.한국산악회는 창립 초기부터 국토구명운동의 일환으로 전국 명산을 순례하는 행사를 가졌다. 1969년 9월에는 창립 24주년 기념행사를 북한산에서 거창하게 열 수 있었다. 당시 회장으로 있던 문필가 노산鷺山 이은상(1903~1982)은 산악인들이 모이면 공
1950년대 한국산악회는 해군과 함께 학생해양산악훈련을 했다. 1957년 8월 여러 고등학교 산악부원들은 인천항에서 해군함정을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목표는 한라산 정상 백록담이었다. 내가 속한 2팀은 서귀포에서 남벽을 향해 오르다가 우회해 백록담에 오른 후 관음사로 내려가는 코스였다.서귀포에서는 어느 초등학교를 빌려 하룻밤 신세를 졌다. 다음날은 돈내코 부근 쌀오름 쪽에서 야영을 했다. 지난 1월에도 왔으나 관음사 쪽에서 올라 별다른 경치를 보지 못했었다. 이번 코스는 달랐다. 거대한 한라산 남벽을 정면으로 보며 걷는 즐거움이 있